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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창작품 암행어사

항상 푸른나무 2007. 2. 13. 10:25
출처 블로그 > COOL~하게... 가슴은 뜨겁게~♡
원본 http://blog.naver.com/ms5450/80018974264

 

                             한국인의 창작품 암행어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암행어사가 한국인의 창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사실 어사라는 말은 중국에서 태어났다. 중국의 황제는 자신의 측근을 대리인으로 지명하여 각 지방을 순행하면서 지방관의 정치를 감찰하게 했다. 이 황제의 대리인을 지칭하는 명칭은 여러 가지이나 가장 보편적인 명칭이 어사(御使)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처럼 비밀리에, 전국적으로 여러 명의 어사를 파견하여 그 보고사항을 토대로 국정 운영에 크게 반영했던 제도는 조선인들이 창작품이다. 이 특이한 방식의 어사를 ‘암행어사’라고 불렀다. 어사가 암행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지극히 독특한 방시그이 감찰활동이었으므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암행어사라면 모두들 제일 먼저 [춘향전]을 떠올릴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소설중에서 가장 흥이 있고 신이 나는 장면을 들라면 많은 사람들이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을 꼽는다.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암행어사 출두 장면을 인용한다.


주광(酒狂)이 날 제, 이때 어사또 군호(軍號)할 제, 서리보고 눈을 주니, 서리 중방(中房) 거동 보소. 역졸 불러 단속할 제, 이리 가며 수군, 저리 가며 수군수군, 시리 역졸 거동 보소. 외올망건 공잔쌔기 새펴립 눌러쓰고, 석 자 감발 새짚신에 한삼 고의 산뜻 입고, 육모방망이와 녹피끈을 손목에 걸어쥐고, 예서 번 듯 제서 번 듯 남원읍이 우군우군, 청파 역졸 거동 보소. 달 같은 마패를 햇빛같이 번 듯 들어, “암행어사 출도야!” 웨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 듯, 초목금수인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출도야. 북문에서 출도야. 동서문 출도 소리 청천에 진동하고 공형들라 웨는 소리 육방이 넋을 잃어, “공형(公兄)이요.” ··· 좌수 별감 넋을 잃고, 이방 호방 실혼하고, 삼색나졸 분주하에, 모든 수령 도망할 제, 거동 보소. 인(印) 궤 잃고 과절 들고, 병부 잃고 송편 들고, 탕근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 쓰고, 칼집 쥐고 오줌누기, 부서지니 거문고요 깨지나니 북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궁기 새앙쥐 눈뜨듯 하고 내아에 들어가서, ···어사또 분부하되, “얼골 들어 나를 보라” 하시니, 춘향이 고개 들어 대상을 살펴보니 걸객으로 왔던 낭군 어사또로 뚜렷이 앉았구나. 반웃음 반울음에. “어씨구나 좋을시고. 어사 낭군 좋을시고. 남원 읍내 추절(秋節)들어 떨어지게 되얏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이화춘풍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로다.”


어사또 이몽룡이 출두하여 남헌·동헌을 발칵 뒤집어놓은 [춘향전]은 민중들의 고충과 애환이 서린 곳이면 언제 어디에서나 나타나 이를 풀어내는 정의의 사도 노릇을 한다.


[춘향전]의 내용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시대라는 엄격한 틀에서 신분이나 지위가 서로 다른 남녀의 사랑은 허용될 수 없는 일임에도 이들은 힘겨운 난관을 극복하고 드디어는 사랑을 획득한다. 기생의 몸으로 하늘같이 높은 사또 자제를 넘본 것은 분수를 모르는 터무니없는 짓이었지만 목숨을 건 지조가 있었기 때문에 춘향의 사랑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았다.


[춘향전]의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어느 봄날 광한루에서 만난 춘향과 이도령은 퇴기 춘향모의 묵인 하에 육체적 관계를 동반한 사랑을 만들어 가는데 이도령의 부친이 남원부사의 직책을 마치고 서울로 벼슬자리를 옮겨가게 되자 그들은 헤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도령은 뒷날 다시 만날 기약만 남긴 채 춘향과 이별한다.


이후 이도령은 과거에 급제하고 호남지방의 어사가 된 반면에 춘향은 신임 부사인 변학도에게 수청을 들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결론은 이도령이 암행어사로 출두하여 춘향을 구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춘향전]이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은 것은 그 내용이 단순한 사랑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중대한 사회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변학도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관리를 설정하여 춘향으로 하여금 그에게 저항하도록 설정함으로써 불의한 관리에 대한 민중의 항거로 확대 해석되었으며 춘향의 승리에서 민중은 승리감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중이 승리감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조선시대의 암행어사라는 특이한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푸 른 바 다